한한령 해제, 왕이 방한 후 관광·면세점·화장품주로 본 실제 회복 수준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8월 19~20일 방한해 이재명 대통령을 접견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의 초청으로, 2021년 9월 이후 약 5년 만의 방한이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이 “한중관계 전면 복원”을 언급하면서 한한령(限韓令) 해제 기대감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한한령은 2016년 사드(THAAD) 배치 이후 중국이 취해온 한류 콘텐츠·단체관광 관련 비공식 제한 조치다. 그런데 이게 실제로 얼마나 풀렸는지는 외교 발언보다 관광객 수, 면세점 매출, 화장품 대장주 실적 같은 확인 가능한 숫자로 봐야 정확하다. 왕이 방한을 계기로, 지금까지 나온 지표를 하나씩 짚어봤다.
왕이 방한, 이번엔 시진핑이 아니라 이재명 대통령의 방중이 논의된다
접견에서 이 대통령은 “지난해와 올해 시진핑 주석을 만난 후 한중관계 전면 복원이라는 확실한 성과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고, 왕이 측은 “안정적인 발전세를 보인다”고 답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조현 외교부 장관과의 별도 회담·오찬도 함께 진행됐다.
이번 방한을 두고 “11월 APEC 계기 시진핑 방한 가능성”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시진핑 주석의 방한은 이미 2025년 11월 경주 APEC 때 11년 만에 성사됐다. 2026년 11월 APEC은 중국 선전(深圳)에서 열리기 때문에, 이번에 논의되는 건 시진핑의 방한이 아니라 이재명 대통령의 방중과 그 계기의 한중 정상회담 개최다.
한반도 정세에 대해서도 폭넓은 의견 교환이 있었다고 보도됐지만, 이 부분은 이번 방한의 핵심 의제라기보다 부수적 논의에 가깝다. 이번 방한에서 한한령을 직접 언급한 공식 발언은 확인되지 않았고, 회담의 무게중심은 선전 APEC 계기 정상회담 성사 여부에 있었다.
중국인 관광객, 회복은 맞는데 “이미 넘어섰다”는 시점마다 다르다
2026년 들어 확인된 가장 최근 수치는 6월 방한 중국인 64만9582명이다. 전년 동월보다 36.2% 늘었고, 국적별로는 1위다. 4월에는 57만4283명이 다녀갔다. 상반기 전체 외국인 관광객은 1071만명(+21.3%)으로, 관광 지출액이 처음으로 10조원(10조389억원)을 넘었다.
증가율만 보면 중국인 관광객의 회복 속도가 특히 두드러진다. 6월 증가율(+36.2%)은 같은 기간 전체 외국인 평균 증가율(+21.3%)의 1.7배에 가깝다. 지금 인바운드 관광 회복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축이 중국인 관광객이라고 볼 수 있는 수치다.
다만 “이미 코로나 이전 수준을 완전히 넘어섰다”는 표현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2019년 대비 회복률은 시점마다 크게 출렁였다. 2025년 8월 단월 기준으로는 104.6%까지 올라간 적이 있지만, 같은 해 11월에는 74.8%에 그쳤다. 2026년 연간으로는 약 671만9천명(+22.6%)이 예상되는데, 이는 2019년(806만8천명) 대비 약 83% 수준이다. 특정 한 달의 수치를 근거로 “완전히 넘어섰다”고 단정하기보다는, 회복이 상당히 진행됐지만 아직 시점에 따라 편차가 있는 상태로 보는 게 정확하다.

무비자, 단체는 연말까지 확정 – 개인 확대는 아직
관광 회복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변화는 무비자 정책이다. 3인 이상 중국 단체관광객에게 15일 체류를 허용하는 무비자 제도는 2025년 9월 29일 시행됐다. 원래 종료 예정일은 2026년 6월 30일이었는데, 7월 초 한중 총리회담(김민석-리창)에서 연말인 2026년 12월 31일까지 6개월 연장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다만 개인 관광객 전체를 대상으로 한 무비자 확대는 아직 시행되지 않았다. 제주도만 예외적으로 개인 관광객까지 30일 무비자 체류를 계속 허용하고 있고, 전국 단위에서는 대신 방한 경력자와 주요 도시 거주자를 대상으로 한 5년·10년 복수비자 확대로 대응하는 중이다. 즉 “단체는 연말까지 확정, 개인은 여전히 조건부”인 상태다.

면세점, 외국인 매출은 늘었는데 왜 업계는 힘들다고 할까
면세점 관련 보도를 보면 서로 반대되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외국인·명품 매출은 늘었다는 기사가 있고, 업계 전체 수익성은 부진하다는 기사도 있다. 둘 다 사실이다. 서로 다른 지표를 보고 있을 뿐이다.
상반기 국내 면세점 전체 매출 약 6.4조원 중 외국인 매출이 약 5조원으로 70%를 넘고, 전년 동기 대비 20%대 증가했다. 신세계면세점 럭셔리패션 매출은 상반기 11.3% 늘어 3년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고, 롯데면세점 명동본점의 럭셔리패션 매출도 상반기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그런데 신세계 럭셔리패션 매출 증가율만 놓고 보면 2024년 +40%, 2025년 +35%, 2026년 상반기 +11.3%로 매년 뚜렷하게 둔화되고 있다. 매출 총량은 늘어도 성장 속도 자체는 꺾이고 있다는 뜻이다. 원인은 1인당 구매액(객단가) 하락이다. 원/달러 환율이 두 달 만에 1300원대까지 내려온 흐름과 별개로, 그 이전까지 이어진 고환율 국면에서 가격 경쟁력이 약화됐고 관광객 소비가 체험·콘텐츠 쪽으로 분산됐다. 여기에 인천공항 임차료 부담까지 겹쳐 업계에서는 ‘매출 부진·객단가 하락·수익성 악화’의 삼중고라는 말까지 나온다.
정리하면, 외국인 방문객이 늘어난 것과 그 방문객 한 명 한 명이 예전만큼 쓰지 않는 것은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면세점이 살아났다”와 “면세점 업계는 여전히 힘들다”가 둘 다 맞는 말인 이유다.

화장품주, 한한령 기대감 때문에 오른 걸까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주가는 최근 신고가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왕이 방한 시점과 겹치면서 “한한령 해제 기대감이 화장품주를 밀어올리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지만, 실제로는 순서가 다르다.
아모레퍼시픽은 2분기 매출 1조1759억원(+17%), 영업이익 1173억원(+59.3%)으로 시장 컨센서스를 웃돌았다. LG생활건강은 북미 매출이 2058억원(+47.3%)으로 늘면서 사상 처음 중국 매출을 추월했다. 이 실적 발표는 7월 말에서 8월 초 사이에 나왔다. 왕이 방한(8월 19~20일)보다 3주 가까이 앞선다.
8월 20일 당일 국내 증시 마감 시황을 봐도 화장품주가 왕이 방한과 특별히 연동됐다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날 코스피는 SK하이닉스의 40조원 자사주 소각 발표와 매수 사이드카 발동이 지배적인 재료였고, 화장품 관련 언급은 마감 기사에 나오지 않았다. 정리하면, 화장품주 강세의 1차 동력은 정치 이벤트가 아니라 이미 반영된 2분기 실적이라고 판단하는 게 맞다.
정책 기대감이 완전히 무관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런 재료는 과거에도 지속성이 짧았다. 2025년 9월 시진핑 방한 기대감이 돌던 때도 일부 중소형 화장품주가 단기 급등했지만, 업종지수 전체는 오히려 -0.55%를 기록했고 실적이 부진한 종목은 그대로 하락했다. 방한이나 정상회담 같은 이벤트 자체가 대형주 전체 흐름을 바꾸기보다, 개별 종목이 단기간 반응했다가 반납하는 패턴이 반복돼 왔다.

콘텐츠는 아직, 완전 해제까지 남은 것
관광·무비자·화장품 같은 경제 분야는 이미 숫자로 확인되는 회복 국면에 들어섰지만, K팝·드라마 같은 콘텐츠 분야는 상대적으로 더디다. 팬미팅 같은 일부 활동은 가능해졌지만, 대형 K팝 콘서트의 중국 내 개최는 여전히 성사되지 않고 있다.
“한한령 완전 해제”라는 표현도 아직 공식적으로 나온 적이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월 방중 마무리 기자간담회에서 “점진적·단계적으로 질서 있게 잘 해결될 것”이라고 밝혔을 뿐이다. 한한령 완전 해제는 이번 왕이 방한에서도 공식 발표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나온 것은 관광·무비자 같은 경제 분야의 단계적 완화이고, 콘텐츠 분야와 개인 관광객 전면 무비자처럼 상징성이 큰 항목은 그대로 남아 있다.
결론
지금 상태를 한 줄로 정리하면, 소비와 관광 지표는 이미 확인 가능한 숫자로 회복이 진행 중이지만, 상징성이 큰 콘텐츠 개방과 개인 관광객 전면 무비자는 아직 손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한령이 다 풀렸는가”를 묻기보다, 11월 선전 APEC을 계기로 한중 정상회담이 실제로 성사되는지, 그 자리에서 콘텐츠 분야 언급까지 나오는지를 확인하는 편이 다음 단계를 가늠하는 더 정확한 방법이다.